여수산단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민관 협의체가 9개 항의 권고안을 잠정 확정했다. 그러나 환경실태·주민 건강 역학조사 용역비 부담 등 주요 안을 두고 업체들이 일방통보식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 여수국가산단 전경. (사진=마재일 기자)


지난해 4월 17일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기업들이 측정업체 짜고 대기오염 측정값을 조작해 온 사실이 드러나 큰 충격을 줬다. 재판을 통해 측정값 조작은 20년 이상 관행처럼 이뤄져 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이 기업윤리를 저버리고 불법배출을 버젓이 할 수 있게 된 것은 기업들이 오염도를 측정하다 보니 가능했던 일로 정부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었다. 여기에다 관리 감독의 부재도 한몫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자치단체에만 환경감시를 맡기지 말고 주민이 직접 오염도를 측정하고 관련 정보를 받자며 민간 감시센터 설치와 여수산단의 환경오염과 안전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 요구까지 나왔다.

44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등으로 구성된 ‘여수산단 유해물질 불법배출 범시민 대책위원회’가 구성돼 규탄 집회를 여는 등 기업 최고경영자의 시민 공개 사과와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컸다.

관련 기업들은 지난해 4월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 책임 통감과 함께 사과했다. 기업들은 산단 주변 지역의 대기 환경 조사를 검토하고 결과를 투명하게 설명한 뒤 오염피해가 없도록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산단 기업 모두가 스스로 환경관리체계를 전면 재점검하고 문제점을 철저히 분석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없도록 책임감 있는 사업장 관리에 나서겠다고 했다. 기업들은 지난해 11월 환경시설에 4159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검찰은 영산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여수산단 업체의 대기측정기록 조작사건을 송치받아 총 25개 배출업체 내 30개 사업장 및 4개 측정대행업체 임직원 등 100명을 수사해 배출업체 임직원 3명과 측정대행업체 대표 2명 등 총 5명을 구속기소 했다. 또 배출업체 임직원 68명과 측정대행업체 법인 4곳의 임직원 10명 등 78명을 불구속기소 했다. 나머지 배출업체 직원 7명과 업체 대표 1명 등 8명은 약식명령을, 배출업체 직원 7명 및 측정업체 직원 2명 등 9명은 혐의없음 처분했다.
 

▲ 여수산단 민관협력 거버넌스 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전남도)


민관 거버넌스, 환경감시센터 설치 등 9개항 마련…11월 중순 확정 예정

이 사건을 계기로 전남도와 여수시, 전문가, 시민단체와 환경단체 등이 참여한 여수산단 민관협력 거버넌스 위원회가 구성돼 지난해 5월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리고 1년 5개월 만에 지난 10월 26일 21차 회의에서 산단 환경관리 종합대책 마련을 위한 거버넌스 권고안 9개 항을 잠정 확정했다.

지난달 29일 전남도가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잠정 권고안의 골자는 ▲위반사업장에 대한 민관 합동조사 실시 ▲환경오염물질 배출시설 및 방지시설 현장 공개 ▲여수산단 주변 환경오염실태조사 연구과제 ▲여수산단 주변 주민 건강 역학조사 및 위해성 평가 연구과제 ▲여수산단 환경감시 활동 강화 및 감시센터 설치·운영 ▲유해대기물질 측정망 설치 및 섬진강유역환경청 신설 건의 ▲여수산단 위반업체 환경개선대책 추진 ▲환경지도점검 공무원 충원 및 장비 확보 ▲행정기관 역할 강화 등이다.

거버넌스 위원회는 산단 주변 5개 마을 주민대표와 사회단체 위원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의견수렴절차를 거쳐 이달 중순까지 권고안을 최종적으로 확정할 방침이다. 권고안이 확정되면 거버넌스 위원회는 권고안 세부 실행계획을 세워 시행하고, 여수산단 주변 환경오염 실태조사 등 2건의 연구과제를 관리·감독할 거버넌스 실무위원회를 운영한다. 영산강유역환경청도 환경감시 활동 강화와 함께 섬진강 유역환경청 신설, 유해대기 물질 측정망 설치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기업들 “환경실태·주민 건강 역학조사 등 용역비 객관적·합리적 근거 제시해야”
전남도 “용역비 단순 비교 안 돼…권고안 확정 전 기업들과 충분히 협의할 것”

그러나 권고안의 핵심인 환경실태조사와 주민 건강 역학조사의 용역비 부담 등에 대해 기업들은 기업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일방통보식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여수산단환경협의회는 지난 9월 거버넌스 위원회 위원들에게 의견서를 보내 57억 원이 넘는 용역비 과다하다며 산출 근거를 제시해 줄 것과 용역기관 선정 및 용역 범위 등에 대한 제고를 요구했다. 주요 쟁점에서 전남도와 업체 간 견해차를 보여 향후 최종 서명 절차가 원만하게 마무리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협의회는 의견서에서 “그동안 거버넌스 주관기관인 전남도에 산단 측이 수차례 간담회와 의견서를 제출했으나 반영되지 않고 거버넌스 위원들에게도 산단 측의 의견이 전달되지 않는 등 참고인이라는 이유로 협의 주체에서 배제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협의회는 16차 회의부터 거버넌스 위원회 회의에 불참하고 있다. 그동안 한화솔루션(주), GS칼텍스(주), 롯데케미칼(주), 금호석유화학(주), ㈜엘지화학 5개사와 여수산단환경협의회는 참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 지난해 4월 22일 여수시청 현관에서 여수국가산단 공장장협의회 소속 공장장들이 산단 기업의 대기오염물질 측정치 조작 불법 배출 사건과 관련해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협의회는 먼저 “여수산단 입주기업의 대기오염물질 배출과 관련해 측정값 조작행위로 인해 지역민께 환경오염에 대한 불안감을 가중하고 심려를 끼쳐드린 점 머리 숙여 사과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기업들은 사회의 모범이 되도록 지속가능한 친환경 경영을 위한 솔선수범과 아낌없는 투자로 더욱 책임감 있는 산단으로 거듭날 것이며, 여수산단이 지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나가겠다”라고 했다.

협의회는 용역비 부담방안과 절차와 관련해 “거버넌스는 여수산단 환경관리 종합대책 마련을 위해 민관의 다양한 주체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해 구성된 단체로, 거버넌스의 의사결정을 통해 시행하는 연구과제의 용역 비용 또한 여수산단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부담해야 함에도 여수산단 기업들의 거버넌스 의사결정 과정에의 참여와 의견 제시가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라고 했다. 협의회는 이어 “용역 비용은 여수산단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부담하는 것이고, 대기자가 측정문제로 인한 피해를 넘어선 부분까지 산단 내 모든 기업에 분담을 요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했다.

특히 용역 비용이 적정한 수준을 벗어나 부당하게 과다한 정도에 이르는 경우, 이러한 비용의 부담을 결정한 기업의 이사 등 경영진이 업무상 배임 행위로 인한 민·형사책임을 지게 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산단 기업들이 용역 비용분담의 확약을 하기에 앞서 용역의 세부 내역과 세부 내역별 비용 산정근거에 관한 자료를 제공할 것과 기업들이 용역 내용의 타당성을 검토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용역기관 선정과 관련해서도 축적된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국립환경과학원 등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이 연구용역을 맡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 여수산단 환경오염물질 측정값 조작사건의 근본적 해결을 촉구해 온 시민비대위가 지난 6월 19일 산단 특별법 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여수산단 5개사는 앞서 지난 6월 15일 전남도에 낸 여수산단 민관협력 거버넌스 종합대책에 대한 공동 의견서를 통해서도 조사용역 내용, 수행기관 선정 및 평가 등을 결정할 때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산단 5개사 또는 산단사가 추천한 전문가를 용역평가위원회에 포함해 신뢰성과 중립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산단 5개사의 대표성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기업들은 거버넌스는 여수산단 전체에 대한 환경관리 종합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기구라며 거버넌스 권고 및 추진 사안은 여수산단 전체 입주기업의 합의를 통해 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산단 5개사가 여수산단에 입주한 220여 개의 사업장 모두를 대표해서 의사 결정할 수 없으며, 2개 조사 용역비 분담 문제는 비용분담 대상이 되는 모든 기업과 협의를 통해 합의할 사항이라는 것이다.

산단 5개사는 지금까지 거버넌스 위원회에 참고인 자격으로 참여했으나 기업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회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16차 회의부터 불참하고 있다. 이들은 “거버넌스 회의에서 산단 5개사의 의견이 심도 있게 논의되거나 반영된 사례가 없었으며, 산업계 입장이 반드시 고려돼야 할 상황에서도 의견이 일축·배제되는 등 더는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특히 전남도가 기업들의 의견을 거버넌스 위원들에게 알리지 않아 거버넌스 회의에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여수산단 기업의 한 관계자는 “협의가 아니라 일방통보식이다. 용역 과제 수행을 위한 마스터플랜도 공식적으로 통보받지 못해 깜깜이다. 기업들이 수용할만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해 달라는 것이다”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기업들은 민간환경감시센터 설치에 대해서도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이미 배출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을 대폭 강화했는데도 민간환경감시센터를 추가로 설치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민관협력 거버넌스 위원회 결정사항으로 지난해 말 전남도는 특별환경지도감시단을 추가 설치했으며, 여수시도 산단환경관리사업소를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는 중복 업무로 인한 행정·예산 낭비이며,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한 경영환경 악화 상황에서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민간환경감시센터가 설치된다면 지역과 산단사가 상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의견을 주도적으로 제시하고 협의하는 ‘지역 상생 협의체’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 지난해 5월 14일 여수산단 대기오염물질 측정치 조작 불법배출 기업 규탄 범시민 결의대회. (사진=동부매일신문 DB)
▲ 여수산단 주변 신풍리 도성·구암·신흥·덕산마을 주민들이 지난해 4월 24일 여수시청 앞에서 대기오염물질 측정치를 조작해 불법 배출한 기업에 대한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반면, 협의체 업무를 주관하고 있는 전남도는 간담회 등을 통해 업체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며, 이번 달까지 분담금을 납부받겠다는 입장이다. 도는 연구과제 비용은 오염 원인자 책임 원칙에 따라 위반업체가 공동분담을 해야 한다는 환경부 의견을 수용해 전체 위반업체를 대상으로 분담기준에 따라 분담금 산출을 확정한 후 기업체에 분담금 설명하고 분담금 납부가 완료되면 연구과제를 수행할 예정이다.

전남도 환경관리과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산단 주변 지역 환경실태조사와 주민 건강 역학조사 용역비 57억 원은 거버넌스 위원회에서 확정한 과업으로 마스터플랜을 거쳐 나온 것이며, 거시적인 국립환경과학원의 용역과 정밀하게(미시적) 진행하는 이번 용역을 단순 금액만 비교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권고안이 확정되기 전 마스터플랜 안도 한 번 더 검토하고 거버넌스 위원회 실무위원회가 구성되면 기업들도 참여하는 만큼 연구용역 방향과 비용 등에 대해 충분히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김상호 전남도 환경관리과장은 지난 10월 26일 21차 회의에서 “우리 5개 업체만 죄인이냐. 나머지 적발 업체도 발표해달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분담금 문제도 그런 식으로 나오고 있는데, (의견서는) 일방적 행위라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거버넌스 위원인 여수시의회 김행기 의원은 전화통화에서 “전남도는 기업들과 수차례 협의를 했다고는 하는데 충분히 협의가 안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이 지난 10월 7일 20차 회의에서 분담금 부담에 대해 기업과 사전 조율이 됐는지를 묻자 김상호 위원(도 환경관리과장)은 “기업체 공장장, 대표 등과 간담회를 했으며 몇 업체에서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며 “최대한 이해와 설득을 통해서 원만히 해결토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의 분담금이 확정된 업체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현재 비공개 중이며, 1‧2종 외 사업장은 최고액과 최저액이 차이가 열 배가 넘지 않도록 산정했다”라고 답했다.

기업들이 내놓은 대책이 미흡하고 감시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정한수 여수산단 민관협력 거버넌스 공동위원장은 지난 10월 7일 20차 회의에서 “기업체 연간 수익대비 상대적으로 환경개선대책 투자금액이 적고, 도 차원의 필요한 조치와 환경개선대책 계획‧실적에 대한 실효성 있는 검증이 필요하다”라고 주문했다.
 

▲ 11월 5일 도성마을 앞 여수국가산단 모습. (사진=마을 주민 제공)

 

여수산단 지역 사회공헌 촉구 목소리 꾸준

지역 정치권은 산단 기업들을 향해 사회공헌 약속이행 등을 촉구하고 있다. 주철현 의원은 10월 7일 성명을 통해 “여수에 공장을 둔 일부 대기업들이 충남 대산공단 30주년을 기념해 대규모 사회공헌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50년을 참고 살아온 여수시민들과의 상생은 모른 척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기업과 최고경영자들은 여수 지역사회와 함께 사회공헌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지역 물품 우선 구매와 여수시민 우선 채용 등 상생 방안을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앞서 여수시의회도 지난 9월 21일 제204회 임시회에서 ‘여수산단 지역사회 공헌사업 추진 공론화 추진위원회 구성 촉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고 대행업체와 짜고 배출량을 조작한 LG화학, GS칼텍스, 금호석유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케미칼 등 여수산단 입주기업들의 사회공헌 책임을 촉구했다.

의회는 “환경 분야 대규모 투자와 주민 배상, 지역사회 공헌 등을 민관 거버넌스를 통해 추진하겠다거나 일부 기업에만 책임을 묻는 것은 불평등하다고 하는 등 면피성으로 떠넘기기와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역사회 내 신뢰를 회복하고 기업이 시민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시민을 중심으로 공론화 기구를 구성해 추진해야 한다”라며 지역사회 공헌사업을 위한 시민 중심의 공론화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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